김현희 칼기폭파 사건 의혹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기가 공중폭발하여 승객과 승무원 115명이 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요,당시 이 사건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김현희가 폭파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현희는 1990년 자백만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요,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김현희를 특별사면으로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23일 대구 MBC는 1987년 미얀마 상공에서 실종된 'KAL 858기'로 추정되는 동체를 밝혔다고 밝혀 칼기폭파 사건 의혹이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대구 MBC는 KAL858기 실종 사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 특별취재팀을 보내 KAL858기 추정 동체 모습을 공개하며 심층 보도한다고 합니다.
KAL기 폭파사건은 1987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보잉707 여객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설치된 폭탄으로 말미암아 인도양 상공에서 공중 폭파돼 실종ㄷ했는데요, 이 사건으로 한국승객 93명, 외국승객 2명, 승무원 20명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지령에 의한 공중폭발'로 결론 짓고 사건 조사를 마쳤지만 사망자 시신 전원이 발견되지 않았고 블랙박스 마저 찾지못해 많은 의혹을 남겼습니다.
당시 테러범으로 지목된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는 바레인 공항에서 잡혔으며, 김승일은 검거되자 음독자살했습니다. 김현희는 김정일의 지령을 받고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로 비행기를 폭파시켰다고 진술했으며 사형판결을 받았지만 사면되어 특별 경호속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이 이같은 만행을 저지른 이유는 88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고 정국을 혼란시키기 위험이었다고 합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뒤 미국은 즉각 북한을 테러국가로 규정해 각종 제재를 가했습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중동에서 외화벌이를 하다, 몇년 만에 귀국하는 우리 노동자들이었는데요, 그런데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 등이 구성돼 1987년 당시 전두환 정권이 대선에 858기 사고를 이용한, 이른바 무지개 공작이 있었음을 밝혀냈습니다.
당시 우리 외교부는 김현희와 김승일 이 2명이 북한 공작원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한국으로 압송해오는 데 외교력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북한 공작원인 걸 알고 압송하려 한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북한 소행으로 몰고 가기 위한 노력과 대선 전에 입국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무지개 공작 문서에는 이 KAL 858기 사건을 북괴의 테러 공작으로 일단 규정하고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첫 페이지에는 11월 29일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 실종된 대하낭공 여객기 사건이 북괴의 테러 공작임을 폭로, 북괴 만행을 전 세계에 규탄하여 북괴를 위축시키고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과 안보 의식을 고취함으로 가능한 대선 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한다라고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심증을 가질 수는 있지만, 북괴의 테러 공작으로 확인되지 않음은 물론 심지어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됐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던 사항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 정부에게는 목적 자체가 대선의 활용이었기 때문에 북한 공작원으로 지목된 김현희를 대선 전에 한국으로 많은 노력을 했었는데요, 그래서 김현희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바레인을 압박합니다. 하지만 바레인은 조기인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바레인 측은 마유미가 KAL기 사건에 연루됐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면서 처음에는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면서 바레인은 마유미의 신원 확인을 위해서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정부는 독약 자살은 북괴 공작원의 수법이고 여권의 정교한 의조 또 원발급자의 공산주의 활동 경력, 이런 것들을 볼 때 마유미는 북한 공작원이다라는 문서를 보내 결국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이러한 안기부의 대선 사업으로 노태우 당시 후보가 역대 최저 득표율로 당선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