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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바다의 아버지 최세월 무명 트로트 가수

dilmun 2023. 5. 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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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바다의 아버지 최세월 씨는 오랫동안 무명가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고속도로 4대 천황'으로 불리며 50년 가까이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소리꾼으로 유명했던 최세월은 국악인이자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박초월의 문하이기도 합니다.

 

 

바다와 최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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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월 프로필

 

1942년생으로 올해 나이 81세인 최세월은 S.E.S 출신 가수 겸 뮤지컬배우 바다의 아버지로 더 알려져있습니다. 명창 박초월의 문하생이었던 최세월은 1970년대 활동한 홍세민의 대표곡 '흙에 살리라'를 작사 하기도 했습니다. 

 

최세월의 본명은 최장봉이며 슬하에 딸 최성희(바다의 본명)를 자녀로 두고 있으며 부인은 사별했습니다.

 

무명 가수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최세월은 고속도로 트로트 가수로 유명했는데요, 특히 지난 1999년 발매한 앨범 '왕타령'은 무려 1백만 장 이상이 팔릴 정도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바다 어린 시절

최세월은 바다가 어렸을 때부터 천부적인 목소리를 타고났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는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해부터 호흡법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최성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7~8년 동안 아버지는 매일 아침, 맨발로 제 배 위에 올라가셨어요. '배에 힘 줘'라고 말씀하시곤 제 배 위에 서시는 거예요. 아무리 아버지가 마른 체형이라 해도 성인이고 얼마나 무거웠겠어요. 아버지가 편찮으시니까 화도 못 내고 너무 힘들었어요. '도대체 무얼 가르쳐주시려는 걸끼'하고 생각만 할 뿐이었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최세월은 딸이 예능 쪽으로는 재능을 타고났다고 말하면서도 가수가 되는 걸 100% 찬성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왜냐하면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가 가수가 되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최세월

 

 

딸을 위해 희생한 최세월

바다는 어릴 적부터 가수였던 아버지의 노래를 늘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던 중 바다가 중고등학생 무렵 최세월은 위와 폐에 구멍이 뚫린 상태의 아픈 몸을 이끌고 밤무대에 올랐다가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습니다. 최세월이 그런 몸으로 무대에 올랐던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딸 바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바다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밤이었다. 밤무대에서도 국악을 하던 아버지는 코트 안에 한복을 입은 차림으로 나설 채비를 했다. 짚신을 신던 아버지가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은 "오늘은 진짜 가기 싫다"는 말. 바다는 그날, 아버지가 아닌 한 남자 인생이 가엾어서 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바다

 

 

바다 S.E.S 데뷔

이후 최성희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노력끝에 안양예술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를 실기 1등으로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S.E.S로 데뷔하며 단숨에 인기를 얻었습니다. S.E.S에서 2002년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바다는 S.E.S 해체 이후 2003년 뮤지컬 '패퍼민트'를 시작으로 '노트르담 드 파리', '브로드웨이 42번가', '미녀는 괴로워', '모차르트!', '카르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작품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비다는 지금도 꾸준히 솔로로 음원을 발매하며 가수로도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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