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방송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안양1번가, 안양중앙시장, 안양예술공원(안양유원지)둘레길, 만안교 텃밭동네, 안양천, 종갓집 들깨 칡 수제비, 임선빈 북 악기장'

dilmun 2021. 7. 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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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아름다운 안양천이 흐르고, 수리산, 관악산, 삼성산이 지키고 있는 분지에 자리 잡은 경기도 안양은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로, 각종 산업이 발달한 동네인데요, 경기도 중앙부에 있는 안양시는 과거엔 대표적인 공업도시였으나 현재는 안양1번가를 비롯하여, 범계역/펑촌역 부근, 인덕원역 부근의 상권이 크게 형성 되어있습니다.

 

 

 

 

 

 

 

 

 

 

안양의 대표적인 명소로는 '안양예술공원', 삼성산', '수리산', 안양천', '평촌중앙공원', '망해암 일몰','안양1번가', '수리산성지(최경환 성인), '평촌1번가 문화의 거리', '병목안 시민공원', '만안교'등을 꼽고 있습니다.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안양1번가'는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생긴 안양역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안양 최대의 번화가로 자리 잡은 건 1990년대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하이틴의 패션 성지로도 불리는 안양1번가는 쇼핑, 외식, 문화생활 등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각종 행사 및 버스킹 공연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특히 전통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이 인접해 있어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과 쇼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정부터 30년 넘게 살아,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는 김영철은 추억이 어린 안양중앙시장을 들어서자마자, 김영철의 고등학교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상인들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세월이 흘러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추억을 이야기하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를 시작합니다.

 

 

과거 '안양 유원지'로 불리던 '안양예술공원'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2동 일원에 있는 공원으로 관악산과 삼성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천연수를 이용하여 1950년대 초부터이미 풀장으로 개발되어온 곳입니다. 특히 전철, 열차, 버스편 등 교통이 편리하여 가족단위 피서지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근처에 안양사, 염불암, 삼막사, 망해암 등의 고찰이 관악산등산로와 연결되어 있어 등산객이 이용하기도 하며, 1969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계곡주변에 주택과 음식점 등이 무질서하게 형성되면서 자연환경등이 훼손되자 하천정비에 나셨고 명칭도 '안양예술공원'으로 변경했습니다.

 

 

2005년 시작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들을 곳곳에 설치해 자연과 사람, 예술이 하나 되는 거대한 야외 갤러리로 탈바꿈하였습니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도에 있는 '만안교'는 조선시대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역인 현륭원을 참배하고자 놓은 것이 시초라고 하는데요, '만안교'의 뜻은 만 년 동안 백성들이 편안하게 건널 수 있는 다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1960년대에는 물고기 잡고 멱을 감을 정도로 깨끗했다는 '안양천'은 공장과 인구 증가로 폐수와 생활하수가 흘러들면서 안양천을 극심하게 오염시켰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주민들이 힘을 합쳐 안양천 정비와 정화에 뛰어들어, 안양천은 다양한 수생식물과 동물, 철새들이 드나드는 명품 생태하천으로 거듭났습니다.

 

 

 

 

 

 

시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집을 개조해 19년째 들깨 칡 수제비만 파는 가게의 주인은 종갓집장손의 외며느리라고 하는데요, 그는 20년 전, 남편 사업의 부도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히자 고향인 영월에서 칡을 가져와 자신만의 비법으로 반죽을 해서 수제비를 떴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수제비를 만들면서도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하고 남편의 마음마저 잡아준 종갓집 며느리의 장한 수제비를 맛봅니다.

 

 

 

 

 

 

청력을 잃었음에도 소리가 주는 손끝의 느낌과 울림을 기반으로 북을 만드는 임선빈 북 악기장은 가난 때문에 어린 시절 거리를 떠돌다가 북 공예 대가 고(故) 황용옥 선생을 만나 최고의 북을 만드는 장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곁에는 유도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 입시 사고로 무릎을 다쳐 운동할 수  없게 되자, 운면처럼 아버지의 길을 잇게 된 아들이 전수자이자 보호자가 되어 아버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북 줄을 잡고 가죽을당기면서 가슴속의 한을 풀어낼수록 더 깊은 울림을 내는 그들의 북소리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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