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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상식/역사이야기9

역사저널 그날 대구10월 사건(10월항쟁) 10월 항쟁 또는 대구 10.1사건은 1946년 10월 1일에 미군정하의 대구부 지역에서 시작된 민중봉기를 말하고 있는데요, 2월 18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74년간 우리 역사에서 잊힌 대구 10월 사건을 조명한다고 합니다. 해방 후 한반도에는 일제에 협력하며 독립투사들을 탄압했던 친일 경찰들이 미군정의 경찰로 재탄생했습니다.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사람들은 또다시 경찰의 강압적인 쌀 공출에 시달리며 배를 곯아야 했습니다. 1946년 10월, 대구에서 배고픔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쌀이 아닌 경찰의 총탄이었습니다. 우리 기억에서 지워진 대구의 '그날'과 미군정, 그리고 친일 경찰의 연결고리를 역사저널 그날에서 살펴본다.. 2020. 2. 18.
김원봉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노덕술 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설한 한국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한국광복군은 1940년 중국 충칭에서 창설되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로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광복군 선언문'을 발표하여 "광복군은 한, 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광복군 창설의 취지를 천명하였습니다. 광복군은 창설 1년여 만에 3백 여명에 이르는 병력을 확보했고 1942년 5월 김원봉이 주도하던 조선의용대도 광복군으로 편입 되었습니다. 조선의용대 또는 조선항일의용군은 대장 김원봉과 조선민족혁명당의 주도로 1938년 10월 10일 중국 후베이 성 한커우에서 결성된 독립군입니다. 김원봉은 1898년 밀양 출신으로 의열단.. 2020. 2. 16.
송진우 신탁통치 반대운동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 영국, 소련 3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결정된 '한국 신탁통치'안 때문에 일어난 국민운동인데요, 한국을 분노에 빠뜨린 이 충격적인 소식에 1945년 12월 31일. 약 30만 명의 대규모 시위대가 서울 시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신탁 통치 반대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앞서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는 기사에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이라고 사실 관계를 정반대로 보도하면서 모스크바 결정의 핵심인 조선 임시정부 구성은 언급하지 않은 채 신탁통치 문제만 부각시켰습니다. 의도적인 오보 이후 국내 정국의 주요 의제는 '찬,반탁'문제로 뒤덮였습니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국내 신문사들로부터 오보된 초특급 대형 사건으로 해방 이.. 2020.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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