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근황

김덕수패 사물놀이 김덕수의 40년광대 인생 이야기 근황

dilmun 2019. 1. 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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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란 꽹가리, 징, 장구, 북을 중심으로 연주하는 풍물에서 취한 가락을 토대로 발전시킨 계열의 국악으로 1978년 2웅 2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공간사랑에서 김덕수를 중심으로 창단된 '사물놀이'패에서 연주를 한 것이 사물놀이의 시작입니다.


기존의 풍물놀이에 비해 앉은반으로 풍물가락을 실내 연주에 적합하게 재구성하였습니다. 주로 호남풍물, 짝드름, 옷다리풍물, 성장구놀이, 영남풍물 등을 연주합니다. 혼히 꽹가리 소리는 천둥, 징 소리는 바람, 장구 소리는 비, 북소리는 구름에 빗대어 말하곤 합니다.








사물놀이의 역사는 1978년 2월28일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열린 '제1회 공간 전통음악의 밤'에서 김용배, 김덕수, 최태현, 이종대 등 젊은 타악 국악임 4명이 '남사당의 후예'를 자처하며 웃다리풍물가락을 공연했습니다. 두달 후 영남풍물을 내세운 두번째 연주가 있었는데, 이 공연 후 사람들은 성공적인 공연을 축하하며 이들에게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물놀이 단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지금, 이들은 다른 단체와 구별하기 위해 창단멤버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김덕수의 이름을 따 '김덕수패 사물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멤버들이 많이 바뀌었지만 1993년 김덕수와 강민석이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을 창단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2019년 새해 1월1일에 방송하는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이 시대의 광대, 사물놀이의 거장 김덕수의 인생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합니다.


김덕수는 1952년생으로 현재나이 67세이며 5살 때 남사당 무동으로 데뷔하였다고 합니다. 남사당은 조선 후기에 전국을 유랑하면서 풍물과 줄타기, 탈춤, 땅재주 등각종 기예를 자랑하고 굿판을 벌였던 유랑 예인집단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김덕수의 아버지는 남사당에서 꽹가리 치는 상쇄와 벅구놀이(소고춤과 상모 돌리기)등을 도맡았습니다. 김덕수는 5살때 조치원 난장에서 인간탑 위의 꼭대기에서 춤을 추는 무동, 즉 새미를 맡았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김덕수는 양도일 등 남사당의 전문 예인들에게 장구와 북, 꽹가리 등 사물뿐 아니라 어름(줄)타기와 땅재주 등 남사당의 여섯가지 기예를 모두 전수받았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 등으로 이어진 광대 기질을 타고난 그는 특히 장구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습니다. 장구 신동이란 별명이 붙은 그는 일곱살 때인 1959년 전국 농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근대화 바람이 불면서 전통예술은 점차 설자리를 잃고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농촌 마을에서 농악은 낡은 것으로 지목돼 사실상 금지됐으며 대학가에서는 시위를 북돋는 데 사용된 풍물 도구가 압수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예술의 급격한 내리막길에 대응해 1978년 김덕수가 내놓은 것이 바로 '사물놀이'였습니다. 마당에서 뛰면서가 아니라 실내의 무대 위에 앉아서 연주하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국악이 창조된 것입니다.


현대에와서 사물놀이란 '사물노리안'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전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진 한류음악이라 할 수 있는데요, 사물놀이의 역사가 어느덧 40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김덕수는 사물놀이 외길인생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요, 그 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부터 재즈, 힙합, 영화음악까지 다양한 대중음악가와 소통하며 사물놀이 외길인생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20년 동안 머물렀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의 교단에서 내려온 후로 그간 어렵게 버텨왔던 사물놀이 전용 극장까지 정리하게 됐습니다. 김덕수의 마음은 여전히 마당을 뛰어놀던 청춘인데 정년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김덕수는 지금까지 살면서 1년 365일 중 200일은 집에 떠나 살아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늘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물놀이 40년 인생동안 아내 김리혜(66세)는 혼자 살림하며 두 아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힙합 가수 출신인 큰아들 김용훈(37세)는 아버지를 두고 아빠로서는 20~30점, 아티스트로는 100전 이라고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김덕수는 '사물놀이 40주년 기념 연주회'를 앞두고 단짝이었던 故김용배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김용배는 김덕수와 함께 사물놀이 탄생의 또 한명의 주역이었던 멤버입니다. 30년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친구의 마지막 길을 붙잡지 못했던 조책감 때문에 그간 명인 김덕수는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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