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방송

가요무대 하춘화 나이 물새 한 마리 남편 이인순

dilmun 2021. 7. 1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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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국민가수 하춘화는 어릴 적부터 워낙 노래를 잘 하기로 그 명성이 자자하였다고 하는데요,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하춘화는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 때까지 주로 부산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여섯 살 때 가족 모두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하춘화의 노래실력을 일찍이 알고 있던 하춘화의 아버지는 사업을 정리하고 하춘화의 가수활동을 돕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합니다. 딸의 재능을 키워 주기로 결심한 하춘화의  아버지 하종오 씨는 하춘화를 서울 동화예술학원에 입학을 시켜주셨다고 합니다.

 

 

1961년 동화예술학원에서 정식 음악 공부를 시작한 하춘화는 당시 기타 치는 8살 김영환,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9살 정선과 함께 '학원의 3대 영재'로 통했다고 합니다. '하춘화와 삼남매' 그룹을 결성한 이들은 백화점 공연까지 했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공연을 눈여겨 본 형석기 작곡가의 제안으로 여섯 살의 나이에 음반을 발매하게 됐다고 합니다.

 

 

 

 

 

 

 

 

 

1961년 만 6세에 나이에 <효녀 심청 되오리다>(오종하 작사/형석기 작곡)라는 곡으로 대한민국 최연소로 데뷔한 하춘화는 이후 1966년 <아빠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를 발표해 크게 히트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춘화는 17세가 되던 1971년에 정규 1집 음반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데뷔해 가수가 되었는데요, 1집 음반의 타이틀곡이었던 정통 트로트 <물새 한마리>가 히트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하춘화는 이때부터 성인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가요계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1972년에는 가수 겸 작곡가였던 고봉산과 신민요 <잘했군 잘헸어>를 듀엣으로 불러 TBC 동양방송에서 여자 가수상을 4년 연속으로 수상하며 불과 18세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 톱 가수로 성장했습니다. 그 해 자신의 고향을 소재로 만들어 아리랑의 맥을 이어나간 신민요 <영암 아리랑>도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당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배 가수였던 이미자, 패티 김, 김상희, 문주란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정상급 여성 가수로 발돋음 하였습니다.

 

 

1955년 6월 28일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난 하춘화는 올해 나이 67세이며 아버지 하종오, 어머니 김채임의 4녀 2녀로 출생했습니다. 하춘화는 1995년 KBS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이인순 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습니다. 슬하에 자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요, 처음엔 중매인 줄 모르고 나갔다는 하춘화는 당시 남편의 첫 인상에 대해 "처음엔 중매인 줄 모르고 나갔는데 줄담배를 피우더라. 그 모습이 너무 미워보였다. 그래서 ‘왜 저런 사람 왔어. 싫어’ 그랬다”라며 “다음날 만났는데 와이셔츠 안에 검은 런닝을 입고 왔더라.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그렇구나 싶었다”고 남편과의 첫만남을 회상했다

 

 

 

 

 

 

 

 

 

그리고 남편과 1년 뒤 크리스마스 디너쇼에서 재회했다고 합니다. 하춘화는 “그때 남편이 ‘12월 31일 무슨 호텔에서 만나요’ 그러더라. 그게 너무 웃겼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춘화는 “그 날짜에 나갔는데 남편이 10분이 지나도 안 왔다. 그래서 불쾌했다. 나중에 왔는데 눈이 돌아가 있더라. 그때가 망년회여서 회사 종무식에서 술을 마시고 온거다. 자리에 앉더라 ‘일찍 오셨어?’ 이러는데 발음이 다 꼬여 있었다. 취하니까 말을 더 잘했다”고 합니다. 

 

 

 

하춘화는 차츰 남편에게 호감을 느꼈고 결국 1995년 이인순 씨와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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