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추억의가요

잘있거라 황진이-조민우(주현미, 김용임)

dilmun 2018. 9. 30.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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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조선시대의 시인이며 명기로 기명은 명월, 출생지는 황해도 개성으로 박연폭포, 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이라 일컫고 있습니다. 황진이는 성리학적 학문적 지식이 해박하였으며 시를 잘 지었고 그림에도 능하였습니다. 특히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웠으며 천대받던 기생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명사들과 거리낌없는 교분을 나누며 자유분방하게 살다간 풍류 여걸이었습니다.


황진이는 전국을 유람하며 많은 시와 그림을 남겼으며 특히 여러 시조들은 문학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 고전 한국문학의 일부로 인정되며, 교과서에도 실리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황진이는 성리학자 화담 서경덕과의 사랑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당대의 석학의 한사람이던 서경덕을 유혹하는데 실패하였으나 그의 학문과 고고한 인품에 매료되어 사제 관계를 맺었습니다.


조민우-잘 있거라 황진이 1957


주현미-잘있거라 황진이


김용임-잘 있거라 황진이 작사:박두환 작곡:나화랑






황진이에 대한 일화는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는데요. 10년 동안 도를 닦아 생불이라불리는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승으로 만든 이야기나 청산리 벽계수야로 시작되는 시조의 주인공 벽계수 이야기 등이 유명합니다.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황진이)


靑山裏(청산리)壁溪水(벽계수) 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一到滄海(일도창해)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明月(명월)이 滿空山(만공산)하니 수여 간들 엇더리


해석: 청산 속에 흐르는 시냇물아, 빨리 흘러간다고 자랑 마라

한 번 넓은 바다에 다다르면 다시 청산으로 돌아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산에 가득 차 있는, 이 좋은 밤에 나와 같이 쉬어감이 어떠냐?


이 시조의 배경은 당시 종친의 한 사람인 벽계수라는 사람이 하도 근엄하여 여자를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높았다고 합니다. 왕족인 벽계수는 자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황진이를 보더라도 유혹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하루는 벽계수가 개성에 와서 달밤에 나귀를 타고 만월대를 산책할 때에 소복 차림을 한 황진이가 이를 시험해보려고 이 노래를 건냈는데 그만 벽계수는 황진이의 시재와 미모에 끌려 자신도 모르게 나귀 등에서 내려 하룻밤을 황진이 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흥을 즐겼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벽계수는 1508년생으로 조선의 왕족이며 세종의 서자 영해군의 손자로 이름 이종숙이며 거문고에 능하고 호방하며 풍류를 즐겼다고합니다. 황진이를 만났을 때는 정4품의 관직에 있을 때로 추정하며 1519년 기묘사화 때 가문이 풍비박산하여 불우하게 보내다가 1545년(인종 1년)경에 신원된 것으로 보입니다.


잘있거라 황진이라는 노래의 배경은 황진이가 십오륙 세가 될 무렵에 황진이의 미모에 빠진 한 서생이 황진이를 아내로 삼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마침내 상사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서생의 상여가 집을 나서서 황진이의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앞으로 나가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때 황진이의 저고리를 관에 덮어주니 비로소 관이 앞으로 나갔다고합니다. 이 사건으로 황진이는 크게 느낀 바 있어서 마침내 창기로 행세했습니다.


조민우-잘있거라 황진이(1957) 가사


나는 간다 나는 간다 황진이 너를 두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머나먼 황천 길에

서화담 그리운 님 저승간들 잊을소냐

섬섬옥수 고운 손아

묵화 치고 글을 짓던 황진이 내 사랑아


나는 간다 나는 간다 황진이 너를 두고

살아 생전 맺지 못할 기구한 운명이라

꽃 피고 새가 울면 님의 넋도 운명이라

꽃 피고 새가 울면 님의 넋도 살아 나서

내 무덤에 꽃이 피네

눈 감은 들 잊을소냐 황진이 내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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