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근황

하춘화 나이 부친상 아버지 하종오

dilmun 2019. 7. 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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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하춘화의 아버지 하종오 씨가 향년 10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하는데요, 부친 하종오 씨는 1961년 여섯 살이었던 둘째 딸 하춘화를 가수로 데뷔시켜 그를 국민 가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당시 하춘화의 나이가 너무 어려 하춘화의 아버지가 줄곧 따라다니면서 매니저 역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종오 씨는 국민가요 '영암아리랑'을 탄생시킨 음악가이며, 하춘화의 60년 가요 활동을 모은 귀중한 자료를고향인 전남 영암군에 기증해 국내 최초로 '한국 트로트 가요센터'가 설립되는 토대를 만련하기도 했습니다.

 

 

 

오는 10월29일 개관을 앞둔 '한국 트로트 가요센터'는 한국 전통가요를 보존하고 발전시켜 세계에 알리는 것은 물론, 인재 양성을 통해 후세들에게 큰 문화유산으로 물려줄 일을 수행하며, 고 하종오 선생의 마지막 업적이 될 전망입니다.

평소 효심이 깊었던 한춘화 씨는 부친상에 비통에 빠진 채 문상객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춘화는 1955년 6월28일생으로 올해 나이 65세이며 1961년 '효녀 심청 되오리다'로 데뷔하였습니다. 일찍이 하춘화의 재능을 알아본 하종오 씨는 그녀를 가수로 데뷔시켰는데요, 1966년 '아빠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를 발표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첫 음반은 1971년 냈는데 이 음반의 노래인 '물새 한마리'가 크게 히트쳤으며, 1971년에는 고봉산과 '잘했군 잘했어'를 듀엣으로 불러 TBC에서 4년 연속 여자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춘화는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배 가수였던 이미자, 패티김, 김상희, 문주란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정상급 여가수로 성장했습니다.

하춘화의 일화 중 빼 놓을 수 없는 일화 중 하나는 바로 온 국민을 웃긴 코미디 황제 이주일과의 일화입니다. 이주일은 무명 희극인으로 '유랑생활'을 하던 중 1977년 11월11일 전북 이리(지금의 익산)역 폭발 사고 때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습니다.

 

 

 

당시 역 앞의 창인동 상남극장에서는 '하춘화 리사이틀'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사회자는 무명 코미디언인 이주일이 진행했습니다. 사고 순간엔 극장 안에 700여 명이 있었으며 사고로 5명이 깔려 숨지고 1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하춘화는 부상을 입었으며, 이주일은 두개골이 함몰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주일은 분장실 담을 넘어서 목숨을 걸고 하춘화를 업고 뛰었다고 합니다.

 

 

 

하춘화는 사고당시 갑작스러운 사고에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와중에 하춘화를 찾는 이주일의 목소리를 들었고 이주일의 엄청난 희생정신으로 하춘화는 이렇게 극적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춘화는 지난 1995년 kbs기획조정실장이었던 이인순 씨와 결혼했는데요, 하춘화는 남편에 대해 내 이상형인 조인성과 거리가 멀다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진정성 있어 보이고 정직해 보여 호감이 갔다고 합니다.

하춘화는 남편을 소개받고는 1년 동안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시 만났을 때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하춘화가 나왔던 녹화테이프를 찾아보며 하춘화에 대해 공부했다고 합니다. 현재 이들 부부는 서로에게 여보라 하지 않고 여보슈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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