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방송

불후의 명곡 김경호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했었지 최이철

dilmun 2019. 2. 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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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곧 전설을 노래하다 2월16일 방송은 지난주에 이어서 전설 이장희와 50여년의 음악 인생을 나눈 특별한 친구들과의 추억 여행! 불후의 명곡-이장희와 친구들 편 2부 무대가 펼쳐진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록의 기둥 김경호는 이장희가 탄생시킨 '사랑과 평화'의 데뷔곡이자 대표 히트곡 '한동안 뜸했었지'를 특유의 폭발적인 무대를 선보일 것으로 보여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밴드 사랑과 평화는 1970년대부터 2010년대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70년대 중반 미8군에서 활동하던 서울 나그네가 전신입니다. DJ로 활동하고 이장희가 이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당시 멤버는 기타겸 보컬 최이철, 故 김명곤, 키보드 이근수, 베이스 故 이남이, 드럼 故 김태홍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밴드의 리드 보컬이자 리더인 이철호 역시 서울 나그네 시절부터 계속 활동했습니다.


1975년 12월 잘나가는 라디오 DJ였던 이장희는 대마초 파동 때문에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다고 합니다. 이장희는 노래를 그만두고 새로운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미8군 무대에서 인상 깊게 본 밴드 '서울나그네'에게 이끌려 앨범을 내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때 팀명을 '사랑과 평화'라고 제안했던 사람은 고인이 된 이장희였다고 합니다.






이렇게해서 1978년 활동금지 중이었던 이장희는 자신의 아내, 아들, 친구 등의 이름으로 '사랑과 평화'를 위한 노래 '한동안 뜸했었지'를 발표하였습니다.


1978년에 발표된 사랑과 평화 데뷔 앨범 '한동안 뜸했었지'는 산울림의 데뷔앨범 '아니 벌써'와 함께 1970년대말 한국의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최이철의 익살스런 토크 박스 기타와 김명곤의 기상천외한 호르라기 연주는 당시 주류음악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한국 밴드 역사의 새 장을 연 '사랑과 평화'는 대마초 사태 이후 이장희가 재기를 위해 혼신을 다해 작곡한 '한동안 뜸했었지'로 전국을 강타했고, 이듬해인 1979년에는 '장미',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어요'등의 곡도 히트를 하였습니다.


1988년 낸 3집에서는 원년 멤버 이남이가 보컬을 맡은 '울고 싶어라'가 폭발적 히트를 기록했고, 이남이가 솔로활동을 위해 탈퇴한 뒤 박성식, 장기호를 영입해 1989년 4집에서 드라마 주제가 '샴푸의 요정'을 히트시켰습니다.







사랑과 평화는 지금까지 그룹사운드의 대명사로 추앙받고 있는데요, 원년 멤버 최이철은 보컬보다 기타리스트로 더욱 명성을 떨친 가수인데요, 펑키 음악 부문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평가 받고있습니다.


한 동안 뜸했었지는 펑키 곡으로 최이철은 22살 때 펑키 음악을 처음 듣고, 진짜 음악을 만났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후 줄곧 펑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펑키는 본래 재즈 용어로 '흑인의 체취'라는 의미의 은어라고 합니다. 1960년대 미국 흑인 댐스음악의 한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고 합니다. 








최이철은 1952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68세인데요, 아버지와 삼촌이 미8군에서 재즈를 연주한 덕에 어릴적부터 재즈음악을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나중에는 아예 재즈 음악을 통째로 외우게 되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사랑과 평화는 밴드명으로 갈등을 겪기도 하였는데요, 지난 2013년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랑과 평화 보컬 이철호가 사랑과 평화를 상표 등록해 이름의 모든 권리를 행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최이철 형님이 명예를 빼았겼고 경제적으로도 곤궁한 처지에 놓였다는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이철호는 상표등록을 한 과정에서 1999년 최이철이 밴드를 나가면서 멤버들을 모아놓고 자신은 나갈 테니 이름을 쓰라고 얘기했다며 그래서 당시 다섯 멤버들의 이름으로 밴드명을 상표 등록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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