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추억의가요

문주란 동숙의 노래, 돌지 않은 풍차,꼭필요합니다, 백치아다다, 주란꽃

dilmun 2018. 10. 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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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은 1949년생으로 현재 나이는 70세입니다. 부산 출신으로 중학교 3학년이던 1965년 부산 MBC 톱 싱거 경연대회에서 <보고싶은 얼굴>로 1등을 한 뒤 1966년 2월 <보슬비 오은 거리>, <동숙의 노래>, <봄이 오는 고갯길>이 수록된 음반을 내면서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하였습니다.





문주란-돌지 않는 풍차-1967


문주란-꼭 필요합니다.(1974)


동숙의 노래


문주란-주란꽃


문주란-백치아다다


동숙의 노래는 1965년 문주란의 데뷔곡이었는데요. 이 노래는 슬픈 사연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MBC '서프라이즈'에서 '동숙의 노래'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였는데요. 사연의 내용은 동숙이라는 여자가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구로동단 가방 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동숙이 십여 년을 동생의 학비와 가사를 책임진 결과 이제 고향의 시골집 생활이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니 어느덧 나이가 서른이 가까워지고 지나간 세월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공부를 하기 위해 검정고시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학원에 있는 총각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선생도 동숙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착하고 순진한 동숙은 총각 선생님의 자취방까지 찾아가 밥도 해 주고 빨래도 해주며 행복해 했습니다. 그리고 장래까지 약속하고 몸과 마음과 모든 돈까지 그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던 중 동숙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내며 동숙은 직장을 잃게 됩니다. 결국 학원비 때문에 학원을 못다니는 처지가 되었고 할수없이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에게 공부를 하겠다고 돈을 요구 했으나 부모는 시집이나 가라고 하며 동숙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10년동 가족을 위해 희생했건만 부모님의 태도에 서운함을 느끼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울면서 서울로 돌아옵니다. 어렵게 친구에게 돈을 빌려 학원에 다시 등록하였는데 동숙은 뜻밖에 소식을 듣게 되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 총각선생은 약혼자가 있고 곧 결혼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총각선생의 반응도 너무나 차가웠습니다. 이미 농락당한 여자임을 알게 된 동숙은 복수를 결심하고 동대문 시장에서 칼을 사서 수업시간에 총각선생의 가슴에 복수의 칼을 꼽습니다. 결국 동숙은 체포되고 살인미수로 복역을 하게 됩니다.


이 곡은 그를 모델로 하여 '영화'와 '동숙의 노래'도 만들어졌는데 노래가사는 한산도 선생이 작사하였고 백영호 선생이 작곡하였습니다. 노래는 1965년 문주란이 불렀습니다. 당시 문주란은 16살 어린나이로 앳띤 소녀였습니다.




문주란의 대표적인 히트곡은 동숙의 노래외에 공항의 이별, 공항의 부는 바람, 공항 대합실,타인들, 돌지 않는 풍차, 낙조, 카사비앙카, 주란꽃, 백치아다다,누가 이 사람을(남돠 북),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등 다수가 있습니다.


독보적인 음색을 자랑하는 문주란은 중성적 목소리와 선 굵은 음색 때문에 데뷔 초 남자로 오해받기도 했는데요. 14세 때 데뷔한 문주란은 각종 루머에 자살까지 시도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정신병원에도 들어간 적이 있을만큼 피폐하게 지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문주란의 근황은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요. 문주란은 현재 경기도 양평에 라이브 카페를 운영중이라고 하는데요. 어린 나이에 데뷔해 힘든 시절을 보낸 문주란은 현재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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