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역사이야기

영조와 창경궁 사도세자

dilmun 2020. 4. 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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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에 위치한 궁궐로 조선 9대조 임금인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입니다. 성종은 창덕궁이 좁아 세 명의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강궁을 확장 보안하면서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창경궁은 장조, 정조, 순조, 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궁으로 옆에 있는 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살피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적입니다. 또한 창경궁은 숙종이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린 곳이며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곳이기도 합니다.

 

 

 

4월 26일 밤 9시 5분에 방송되는 MBC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는 사도세자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한 창경궁을 찾는다고 합니다. 오늘 방송은 <영조의 미운우리새끼 1편>으로 강훈이와 SF 로운이가 함께 떠난다고 합니다.

 

https://tv.naver.com/v/13515255

 

[선공개] 로운X강훈 선녀판 아빠와 아들?! (feat. 사도세자, 정조)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 | [선공개] 로운X강훈 선녀판 아빠와 아들?! (feat. 사도세자, 정조)

tv.naver.com

 

영조는 무려 반세기가 넘는 52년 동안 왕좌를 지켜며 최장수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는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반란과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당파 간 싸움과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냈습니다.

당시 영조는 솔선수범하는 임금으로 당파 간 분쟁을 지혜롭게 조정해 나가는 탕평책을 내놓았고 또한 민생안정을 위한 정책을 잘 실행해 안정된 왕권과 사회를 이룩한 성군으로 존경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조는 평생 천출의 아들이라는 편견과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 때문에 평생을 콤플렉스 속에 살아왔다고 합니다. 영조의 어머니인 최숙빈은 궁중에서 가장천한 무수리 출신이었습니다. 생모가 미천해 영조는 숙종의 후궁이었던 영빈 김씨의 양자가 돼야만 했습니다.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는 과거 MBC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이기도 한데요, 숙빈 최씨는 7세 때 허드렛일을 하는 무수리로 궁궐 생활을 시작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인현왕후를 모시며 지내던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가 폐출된 뒤 밤마다 그의 복위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었다고 합니다.

 

 

질투에 눈이 먼 장희빈의 악행과 구박에 시달렸지만 1693년(숙종 19년)에 숙원(종사품)으로 책봉됐으며, 그해 10월 아들 영수를 낳았지만 두 달 만에 잃었습니다. 이듬해 9월 연잉군 금을 낳았는데 그가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입니다. 그리고 최씨는 숙종 25년(1699년)정일품 숙빈으로 봉해졌습니다.

숙빈 최씨는 1718년(숙종 44년) 49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고 당시 양주땅이었던 지금의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묻혔습니다. 효심이 깊었던 영조는 무덤 동남쪽에 시묘막을 짓고 어머니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고 합니다. 

 

 

 

숙빈 최씨의 무덤인 소령원은 왕과 왕비인 무덤인 능보다 한 단계 아래인 원이고 1991년 10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비공개 문화재'로 분류돼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영조는 어머니의 신분 때문에 평생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영조가 즉위한 후 경종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면서 소문은 점점 심각해졌고, 일부에서는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영조는 아들을 통해서 신분 콤플렉스를 깨기를 원했습니다. 정통성을 가진 온전한 왕으로 세우기 위해 아들 사조세자에게 끊임없이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문예보다 무예에 더욱 두각을 드러내던 인재였습니다.

당시 권력은 노론의 손에 있었고, 사도세자는 영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시작했습니다. 사도세자는 노론세력을 멀리하고 소론정책을 지지했는데요, 그러자 노론세력은 그를 제거할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영조는 첫째 부인 정서왕후를 먼저 보낸 뒤, 66살의 나이에 무려 쉰살도 더 차이나는, 15살의 정순왕후 김씨를 두 번째 중전으로 맞이했습니다. 영조의 총애가 남다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론세력은 정순왕후를 동원해 사도세자가 궁녀를 함부로 죽이고 왕궁을 빠져나가 문란한 행동을 일삼는다며, 왕과 세조사이를 이간질했고 사도세자는 점차 영조의 눈밖에 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고 사도세자는 뜨거운 여름날, 무려 8일을 물 한모금 못마시고 뒤주속에 갇혀 죽어갔습니다.

당시 사도세자가 뒤주속에 갇혀 죽었던 장소는 창경궁 문정전으로 이 곳은 임금이 평상시 정사를 보던 편전입니다. 문정전은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위패를 모시는 혼전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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