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영화이야기

영화 1987 6월 항쟁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dilmun 2020. 6. 2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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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7일 개봉한 영화 '1987'은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데요, 이 영화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은 누군가는 해야 했지만 하지 못했던 역사의 단면을 생생하고 리얼한 스토리로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연해냈습니다.

영화 <1987>의 출연진은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김의성, 문성근, 설경구, 강동원, 여진구, 오달수, 고창석등 재쟁한 배우자들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 <1987>은 대페로 실존 인물들을 고증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장준환 감독과 제작진은 박종철 열사의 유가족들을 만나 영화의제작에 대해 허락을 받고 또 박종철 열사의 유품인 안경을 빌려 똑같이 제작하여 영화에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연세대학교 87학번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한열 합창단은 영화의 힘을 보태기 위해 직접 녹음에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이한열 합창단이 녹음한 '그날이 오면'은 1987년 당시 대표적인 민중가요인데요, 이 곡은 '1987'의 메인 테마곡이자, 엔딩을 장식하는 곡으로 사용하였습니다.

 

 

youtu.be/GIvyqhywCvg

 

 

특히 제작진은 그 시절을 겪었던 관객들이 영화를 봤을 때, 당시를 회상하고 감동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픈 세트를 지어 연세대학교 정문부터 시청 광장, 명동 거리 등을 되살려 냈고, 건축 자재 하나까지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고 합니다. 

 

 

1987 즐거리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 사망한다. 증거인멸을 위해 박처장(김윤석)의 주도 하에 경찰은 시신 화장을 요청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거짓 발표를 이어가는 경찰. 그러나 현장에 남은 흔적들과 부검 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을 가리키고, 사건을 취재하던 윤기자(이희준)는 ‘물고문 도중 질식사’를 보도한다.  이에 박처장은 조반장(박희순)등 형사 둘만 구속시키며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 한편, 교도소에 수감된 조반장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이 사실을 수배 중인 재야인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조카인 연희(김태리)에게 위험한 부탁을 하게 되는데…  한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

 

 

 

영화 <1987>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과 폭행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와 6월 항쟁과정에서 경찰의 직사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두 사람의 죽음은 전두환의 4.13 호헌 발표와 맞물리며 폭발적인 민중항쟁을 낳았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전두환 정권은  '반제동맹당 사건'과 '마르크스-레닌주의당(이하 ML당) 사건' 등의 공안조작 사건들을 만들어내며 소위 '얼음정국'을 조성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혹한 속에서 떨고 있었던 1987년 1월 14일, 경찰 대공수사관들은 피해자 박종철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했습니다. 수사관들은 1985년 10월에 터진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박종운의 소재를 말하라고 추궁했고, 박종철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에 수사관들은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대한민국 경찰 수사관들이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을 심문하던 중 물고문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물고문에 가담한 수사관들은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 강진규, 조한경으로 이들은 박종철의 옷을 모두 벗기고 조사실 안에 있는 욕조로 끌고 가 물고문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고문 도중 욕조의 턱에 목 부분이 눌리면서 결국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당황한 수사관들은 사건은폐를 위해 대공분실 부근의 용산 중앙대학교병원으로 이송해 응급처치를 시도했지만, 박종철은 이미 숨이 거둔 상태였습니다.

 

 

 

6월 항쟁

6월 항쟁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6월 29일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6월 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6월 민주화운동, 6월 민중항쟁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4. 13 호헌 조치, 그리고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맞아 사망한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고 1987년 12월 16일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습니다.

6월 항쟁 의의

6월 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었고 사회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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