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방송

문가영 나이 '선을 넘는 녀석들' 흥선대원군과 고종, 명성황후

dilmun 2020. 9. 1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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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대표적인 뇌섹녀로 알려진 배우 문가인은 물리학자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가 독일 유학 시절 만나 결혼해,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합니다. 문가인은 한국어, 영어, 독일어 3게국어를 구사하며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됐고,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룻 등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승마, 클라이밍, 골프, 발레 등에도 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96년생으로 올해 나이 25살인 문가영은 2006년 영화 '스승의 은혜'로 데뷔하였습니다. 

 

 

 

3개 국어 능통자이자 독서광으로 연예계 대표 뇌섹녀로 자리매김한 배우 문가영은 9월 13일 밤 9시 10분에 방송되는 MBC '선을 넘는 녀석들' 역사 속 라이벌 특집 2탄에 출연하여 뜨거운 부자 관계이자 피 튀기는 권력 싸움을 했던 세기의 라이벌, 아버지 흥서내원군과 아들 고종의 선을 따라간다고 합니다.

https://tv.naver.com/v/15718966

 

[선공개] 공부가 싫었던 고종이 조선 최초로 여름방학을 만들었다?!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 | [선공개] 공부가 싫었던 고종이 조선 최초로 여름방학을 만들었다?!

tv.naver.com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을 건국한 고종은 1852년 7월 25일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군부인 여흥 민씨의 둘째 아들로 흥선군 개인 사저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실권은 없어도 종친부의 주요 직책들을 맡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종은 사실 왕위와는 거리가 먼 친척으로 직계가 아닌 그를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바로 아버지 흥선대원군이었다고 합니다. 세도정치로 인해 안동 김씨의 세력이 하늘을 찌를 시절, 흥선대원군은 그들의 견제를 피해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아들을 왕위에 올렸습니다.

고종이 철종의 뒤를 이어 1863년 즉위하게 된 것은 아버지 흥선군과 익종비 조대비와의 묵계에 의해서였다고 합니다. 순조, 헌종, 철종 3대에 걸쳐 세도 정치를 한 안동김씨는 철종의 후사가 없자 뒤를 이을 국왕 후보를 두고 왕손들을 지극히 경계했습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 세도의 화를 피해 시정 무뢰한과 어울리고 방탕한 생활을 자행하며 위험을 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이하응은 조성하를 통해 궁중 최고의 어른인 조대비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철종이 죽자 조대비는 재빨리 흥선군의 둘째 아들 이명복으로 하여금 익종의 대통을 계승하도록 지명하여 그를 익성군에 봉하고, 관례를 거해아여 국왕에 즉위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종은 당시 12세의 어린 나이였으므로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습니다. 이때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조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조대비의 수렴청정을 도왔습니다. 1866년(고종 3)2월 조대비가 철렴을 선언하자 고종이 친정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고종은 장성하게 되면서 직접 통치를 하려는 강한 의욕을 가지게 되면서 흥선대원군과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흥선군은 어린 고종을 대신해 안동 김씨를 완전히 몰아내고 개혁정치를 펼치면서 백성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때 흥선대원군 못지않은 야망을 가지고 있었던 며느리, 여흥 민씨 명성황후는 아버지에게 벗어나길 원했던 고종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합니다.

 

 

결국 부부 이상의 정치적 동반자가 된 고종과 명성황후는 급기야 흥선대원군을 정계에 몰아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흥선대원군은 그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듯 했으나, 이때 여흥 민씨 세력의 횡포에 못 이긴 군인들이 일으킨 '임오군란'이 반발하였습니다. 

이처럼 당시 시대상은 계속해서 권력의 판이 뒤바뀌며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또한 열강들의 침략 속에서 500년 조선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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