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방송

케이팝의 전설 김시스터즈 데뷔 60주년 어머니 목포의 눈물 이난영

dilmun 2018. 12. 25.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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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케이팝 스타 '김시스터즈'의 파란만장한 삶이 브로드웨이 진출을 목표로 한 뮤지컬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김 시스터즈의 당대 최고의 작곡가 김해송과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가수 이난영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고 합니다. 1950년 김해송이 행방불명된 후 가족의 생존이 위태로워졌을 때 이난영은 딸들과 조카딸을 훈련시켜 미군부대 무대워 세웠다고 합니다.


김시스터즈는 1959년 미국 라스베가스에 도착해 라스베가스 최고의 유명 호텔이었던 썬더버드호텔 공연을 시작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이후 뉴욕의 연예 칼럼니스트이자 TV쇼 호스트 에드 설리번의 눈에 띄게 되면서, CBS의 인기 버라이어티 쇼 '에드 설리번 쇼'에 무려 25번이나 출연합니다.







당시 김시스터즈는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프랭크 시나트라 등 쟁쟁한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정도로 유명세를 탔고 이후 김 시스터즈는 '디나 쇼어'와 '딘 마틴 쇼'를 포함한 미국의 주요 엔터테인먼트 버라이어티 쇼에 여러 번 출연했습니다. 또 미국 전역과 유럽,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수십 년 동안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김시스터즈는 김해송과 이난영의 두 딸인 김숙자, 김애자와 이난영의 오빠 작곡가 이봉룡의 딸(김민자)로 구성된 3인조 걸그룹으로 1953년에 결성한 여성 보컬그룹입니다.





김시스터즈는 1975년경 20년 간의 미국 공연을 끝내고 은퇴하였습니다. 김애자는 1987년 폐암으로 숨졌고 김민자는 헝가리 출신 재즈 연주자와 결혼해 부다페스트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 걸그룹의 원조는 '저고리 시스터즈'라고 하는데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성 가수들이 모인 저고리 시스터즈는 '눈물 젖은 두만강'의 가수 김정구와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 저고리 시스터즈를 거쳐 간 가수 중에 이난영이 있습니다.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은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가세는 기울었고 김해송은 납북됐습니다. 이난영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두 딸 숙자와 애자, 그리고 조카 민자를 미8군에 올렸습니다.


이난영은 1963년 성공한 딸들의 초청으로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이난영은 딸들과 함께 에드 설리반 쇼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김시스터즈는 1973년까지 활동하다가 김민자가 헝가리인과 결혼하면서 큰 언니인 김영자가 들어왔습니다. 






이난영은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힘든 유년을 보냈지만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인정받아 1932년 극단 태양극장에서 가수로 데뷔하였습니다.이듬해 1933년 일본 공연 중에는 첫 번째 음반을 녹음했고, 곧 오케레코드 전속이 되어 당대 최고의 가수로 성장해 갔습니다.


1935년 목포의 눈물이 발표되면서 이난영의 인기는 더욱 확고해지고 광복 이후에도 최고의 가수로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난영은 6,25전쟁 이후 자녀들을 음악가로 키우는데 헌신해 김시스터즈와 김보이즈의 미국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이난영은 딸들과 헤어진 후 고독한 시간을 보낸 후에 1965년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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