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상식/근황

김병조 인생다큐 마이웨이 최정상에서 돌연 연예계를 떠난 사연 공개

dilmun 2019. 1. 2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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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코미디언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배추머리 김병조가 정말 오랜만에 TV에 출연한다고 합니다. 어느덧 이제는 원로 코미디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요, 인생다큐 마이웨이 132회에서는 김병조가 최정상에서 돌연 연예계를 떠나야 했던 사연을 공개 한다고 합니다.


1950년생인 코미디언 김병조는 1950년생으로 현재 나이 69세이며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75년 TBC의 코미디 프로그램'살짜기 웃어예'를 통하여 데뷔하였습니다. 그는 1980년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 MC를 맡아 대한민국 최초로 TV에서 시사 개그를 선보이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김병조는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배추머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지구를 떠나거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거라, 먼저, 인간이 되거라 등 많은 유행어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또 MBC 아동 프로그램인 뽀뽀뽀에서 뽀식으로 나온 이용식과 같이 뽀뽀병이로 활동하여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현재 김병조의 근황은 고향인 광주의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대교수이자 평생교육원 명예원장으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대학원과 학부에서 교단에 서기도 하고 정부청사나 지방을 돌아다니며 공무원이나 일반인을 상대로 강의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1981년 5월 23일 뽀뽀뽀 첫방송에서 김병조는 뽀미 언니 왕영은, 뽀식이 이용식과 프로그램을 함께했는데요, 뽀식이와 뽀병이는 쫒는 자와 쫒기는 자, 주인과 머슴, 형사와 범인등을 맡으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김병조는 일요일밤의 대행진, 뽀뽀뽀등 엄청난 인기를 안고 CF에서도 많은 광고를 찍었습니다. 당시 찍은 CF만 40, 50편에 달했으며, 냉장고, 세탁기 등 톱스타의 전담 CF뿐 아니라 빙그레 마이컵, 레이다, 기린 짜라빠빠 등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과자 CF까지 찍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7년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김병조가 출연자(사회자 임성훈)로 참석해서 진행하던 중 '대본'에 있던 멘트를 그대로 읽은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주최 측이 준 연설문의 편향성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MBC가 주도적으로 막간행사를 진행했고 소속 개그맨 중 김병조가 동원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MBC가 져야 했지만 김병조가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 것입니다.






김병조는 전당대회 뒤풀이 행사로 마련된 오락프로에서 민정당은 정을 주는 당이고, 통민당은 고통을 주는 당이라는 문구를 무심코 내뱉은데 다음날 신문에 기사화 되며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문에 위협적인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온 가족은 도피생활을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세상의 비난에 시달리다보니 건강도 악화되어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버리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아버지는 아들 문제로 노심초사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로인해 잘나가던 일요일밤의 대행진은 직격탄을 맞고 시청률은 나날이 떯어졌습니다. 김병조는 MBC에서 SBS로 이적해 활동했지만 예전의 인기를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김병조는 고향 광주로 내려가 광주방송에 몸을 담았습니다.








그러던 중 조선대학교 사회교육원 원장이 김병조에게 강의를 요청하게 되었고 김병조는 그곳에서 교수로 연극영화 강의를 하면서 '명심보감' 강의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명심보감과 연을 맺은 것은 어린 시절부친의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평생을 한학자로 살면서 전남 장성에서 서당 훈장을 하셨던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이 밑받침이 됐다고 합니다. 


김병조의 부인은 동양화가로 17회 한국현대미술대전 사군자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이력을 지녔는데요, 지금은 김병조의 매니저 겸 운전기사 역활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병조가 이처럼 명심보감을 전파하는 것은 선친의 유훈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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